과기자문회의, 예타 폐지 후 '대형 R&D 사전점검체계 개편안' 의결
1000억 이상 연구형 R&D 사업은 사전점검…경제성 아닌 시급성 평가
대규모 구축형 R&D '전주기 심사'…사업 가부 아닌 운영 필요사항 점검
우리나라의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을 위해 거쳐야했던 'R&D 예비타당성조사(예타)'가 18년 만에 폐지됐다. 정부는 예타 폐지로 인한 졸속 사업을 방지하기 위해 1000억원이 넘는 대형 R&D를 대상으로만 사전점검을 진행하기로 했다. 사전점검 기준이 기존 예타 제도의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2배 상향됐다.
정부는 신속한 R&D 추진의 걸림돌이 됐던 기존 예타에서의 '경제성' 평가를 없애고, 시급성·구체성·중복성 등 필수항목만 간소화해 사전점검을 한다는 방침이다.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12일 제5회 심의회의에서 R&D 예비타당성조사(예타) 폐지 이후 대규모 국가연구개발사업의 투자·관리 체계를 개편하기 위한 '대형 R&D 사전점검체계 전면 개편 방안'을 최종 의결했다.
앞서 지난 1월29일 과학기술기본법과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서 예타 제도는 공식 폐지됐다. 이날 대형 R&D 투자 심의체계 개편안까지 확정되면서 이제 우리나라의 대형 R&D는 예타가 아닌 맞춤형 사전점검을 받게 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번 대형 R&D 사전점검체계 전면 개편 방안이 예타 폐지를 통해 확보된 신속성과 유연성을 유지하면서도, 사업 기획 부실이나 예산 낭비를 사전에 방지하는 관리 기능은 강화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강조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사전점검 대상인 대형 R&D의 기준이 기존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상향된다. 이는 글로벌 기술 경쟁 심화에 따른 대규모 집중 투자 추세와 1999년 제도 도입 이후의 물가 상승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조치다. 아울러 모든 R&D 사업을 동일한 방식과 절차로 평가했던 예타와 달리 후속 제도는 사업 성격에 따라 '연구형'과 '구축형'으로 구분하고 각 유형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점검 체계를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1000억원 이상 연구형 R&D 사업은 사전기획점검…경제성 평가 대신 '시급성' 등 확인
연구형 R&D는 인공지능(AI), 양자, 바이오 등 전략기술 개발, 기술사업화, 인력양성 등 연구개발 중심의 사업을 의미한다. 예타 폐지의 핵심 취지인 신속성과 유연성 확보가 특히 중요한 유형이다.
1000억원 이상 신규 연구형 R&D 사업에 대해서는 예산심의 전에 사업계획의 완성도를 점검하기 위한 '사업기획점검'을 실시한다. 이는 혁신본부의 짧은 예산 심의 기간을 보완하기 위한 사전 검토 절차로, 예산 요구 전년도 11월부터 약 5개월간 진행된다. 점검 결과는 3월 중 각 부처에 통보돼 신규 사업계획의 미비점 보완 및 예산 요구안 편성에 활용된다.
또 유사 기술 분야 및 성격별 '사업군' 단위로 점검을 실시해 사업 간 우선순위 조정과 재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이를 통해 개별 사업 중심이었던 기존 예타 대비 예산 심의와의 연계성도 한층 강화된다.
기존 예타가 경제성을 포함한 8개 항목을 평가함에 따라 연구 현장의 행정 부담이 컸던 점을 고려해 사업기획점검은 시급성·구체성·중복성 등 4개 필수항목으로 간소화했다. 실제 제품 개발이나 상용화 등으로 이어지는 일부 R&D의 경우에만 별도 항목으로 경제성을 살피게 된다. 이를 통해 연구자가 행정 절차보다 연구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방침이다.
매몰비용 큰 구축형 R&D 관리 위한 '전주기 심사제도' 도입
대규모 연구시설·장비 구축, 연구단지 조성, 우주분야의 체계개발 사업 등을 포함하는 구축형 R&D의 체계적 관리를 위한 '전주기 심사제도'도 도입한다. 1000억원 이상 규모의 구축형 R&D 사업은 사업추진심사, 설계적합성심사, 주요계획변경심사 등을 통해 사업 기획부터 완료까지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 받게 된다.
먼저 사업추진심사는 구축형 R&D 사업이 연구 현장에서의 과학·기술적 필요성’에 따라 추진될 수 있도록 실제 수요를 검증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앞으로 각 부처는 학회나 협회 등 민간 중심으로 협의·도출된 수요를 바탕으로 사업을 기획해야 한다.
사업추진심사는 기존의 예타처럼 사업의 가부를 결정하기 위한 점검이 아니라, 사업이 차질 없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기술 확보 여부, 사업관리 계획 등 실제 사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사항들을 점검한다.
따라서 예타와 같은 종합평가(AHP) 방식이 아니라 항목별 과락제를 도입하여 사업추진 상 리스크가 해소됐을 때 사업 추진이 가능한 구조로 이뤄진다. 또한 탈락하면 대상선정부터 다시 거쳐야 하는 예타와 달리 심사는 기술, 사업관리 등 사업추진 필요성 외의 항목으로 탈락한 경우 대상선정 면제가 가능해 행정부담을 줄이고 신속한 추진을 지원한다.
특히 기술개발이 선행돼야 하는 첨단 연구시설, 우주발사체 등의 체계개발사업은 총 사업규모를 확정하지 않고 기술개발이나 설계 등에 대한 예산만 먼저 확정하여 추진되게 함으로써 고난이도 사업이 리스크를 줄여가며 단계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한다.
아울러 이러한 사업들이 특정지역을 대상으로 추진되는 경우에는 입지를 사전에 결정하지 않고 심사 신청 시 입지 후보지와 선정계획만을 제출토록 한다. 이는 과학적·기술적 가능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지가 먼저 결정되어 시간에 쫓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사업추진심사 통과 후엔 설계적합성심사 진행…계획변경도 더 유연하게
사업추진심사를 통과한 사업은 설계가 완료되면 설계적합성심사를 거쳐야 한다. 이때 심사 대상사업은 기술개발이나 설계포함 여부에 따라 사업추진심사 시 결정된다.
설계적합성심사는 설계 완성도뿐만 아니라 기술 확보 상태, 세부 공정 계획 등 시공 가능 여부와 입지 적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한다. 설계적합성심사를 통해 연구시설·장비 구축, 건설 공사 등 시공에 필요한 사업비가 결정되며 이 단계에서 전체 사업 규모와 부지가 확정된다.
다만 기술 확보 상태가 현저히 미흡하거나 사업을 계속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엔 사업 중단도 가능하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예산이 지속적으로 투입되는 것을 방지하여 투자 효율성과 재정 건전성을 제고한다는 계획이다.
주요계획변경심사는 사업이 진행되면서 물가상승, 환율변동 또는 적용기술의 변경 등 대내외 환경 변화로 사업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경우 계획변경의 적정성을 점검하는 방식이다. 국가재정법 기반의 사업계획적정성재검토 제도와 달리 주요계획변경심사는 변경 사유와 시점에 따라 전면 재검토 또는 단가 중심 검토 등 점검 항목을 선택적으로 적용해 신속하고 유연한 사업추진을 지원한다.
모든 심사는 각 사업별로 민간 전문가 중심의 전문검토위원회를 구성해 기획, 설계, 기술, 사업관리 등에 대한 심층검토를 진행하게 된다.
사업기획점검과 사업추진심사 결과는 예산 요구 전인 3월에 각 부처에 통보된다. 각 부처는 4월 말까지 점검 결과에 따라 지출한도 내에서 모든 R&D 사업을 편성해 예산 요구를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예타 폐지 이후 부실사업의 추진이나 과도한 예산요구가 방지될 것으로 기대된다.
과기정통부는 이번 제도의 점검 기준, 방법, 절차 등을 규정하는 행정 규칙 제정을 신속하게 진행할 예정이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은 "18년 만의 예타 폐지에 이은 R&D 투자 심의 체계의 전면 개편은 대형 R&D의 신속성과 재정 투자 효율성 제고 측면에서 역대 과학기술 정책 중 가장 중요한 성과"라며 "이번 방안을 통해 대한민국은 글로벌 수준의 체계적인 R&D 투자·관리 시스템을 갖추게 돼 기술 추격형 국가에서 선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출처 : 뉴시스(https://www.newsis.com) 윤현성 기자